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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은 그곳에 있다: 그곳에는 모든 것이 있다.

 

기억은 시간이 지날수록 희미해진다. 시간의 층이 켜켜이 더해질수록 불분명하고 흐릿해지다가, 마침내 망각된다. 그래서 기억은 대개 애틋하고 아련하다.

 

  이지연의 ‘5월의 일지를 들춰보다’ 시리즈는 직선으로 이루어진 대담한 구성으로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라인테이프를 캔버스에 직접 붙여서 만든 직선과 그 직선들로 이루어진 각각의 면은 오직 하나의 색으로만 채워져 있다. 모호함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을 것 같은 간결한 작품들이 형상화하고 있는 것- 그것은 기억이다.

 

  기억을 말하는 이지연의 방식은 너무도 간결하기에 때로는 단호함마저 느끼게 한다. 이는 기억이 가진 본질적 속성, 즉 모호함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기억은 과거의 어느 한때에 어느 곳에서 누군가, 혹은 무엇에 의해 벌어진 사건이다. 시간은 매순간 과거가 되며 현재로부터 멀어져가고 모든 사건은 종료를 향해 달려간다. 멀어지고 소멸되는 것, 그것이 기억의 숙명이다. 사라져가는 기억을 향해 이지연은 손을 뻗어 그것이 가진 가장 단단한 부분을 붙잡는다. 그 손에 붙잡힌 것은 기억이 생성된 장소, 바로 공간이다. 이지연은 자신이 가진 가장 단단한 기억을 공간의 형상으로 펼쳐놓는다.

 

  ‘5월의 일지를 들춰보다’는 100점이 넘는 연작이다. 2003년에 시작되어 2009년 현재까지 계속되고 있는 이 시리즈는 봄기운이 무르익은 5월, 젊음이 약동하는 교정에 대한 기억을 기원으로 하고 있다. 이지연은 그때의 기억을 향해 거듭해서 손을 뻗고, 그것은 견고한 공간의 형태로 표현된다. 이렇게 완성된 공간들은 수평적으로 ‘완전히’ 동등하다.

 

  이지연이 기억을 반복하는 이유는 그것을 복구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사건은 기억으로 전환되는 순간 현실세계를 떠난다. 우리가 기억을 떠올리며 그리워하는 까닭은 두 번 다시 그것에 닿을 수 없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정교하게 기억을 복구해내더라도 본래의 기억, 즉 그 순간의 사건에 비하면 그것은 모조품의 혐의를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기억을 되새기는 것을 멈출 수 없고 이지연은 계속해서 5월의 기억을, 그때 그 곳을 형상화한다. 눈치 빠른 관객은 어쩌면 이미 이지연의 작업이 주는 간결하고 단호한 첫인상의 이면을 보았을 것이다. 즉 작가 역시 우리와 다르지 않음을.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그때에 대한 깊은 그리움과 애정이 자꾸만 기억을 곱씹게 한다는 것을.

 

  ‘5월의 일지를 들춰보다’는 하나의 기억, 하나의 공간을 이야기하면서도 저마다 다른 맛을 내고 있다. 애초에 정확성을 담보할 수 없는 기억의 속성이 더 큰 가능성을 열어놓은 것이다. 영원히 닿을 수 없는 것, 사라져가는 것. 바로 그렇기에 기억은 매력적이고 무한한 이야기를 제공해준다. 

 

글. 박성진.

한국예술종합학교 ISD 서사창작 전문사.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연세대학교 인문대학을 졸업했다. 소설, 수필, 평론에 걸친 다양한 글쓰기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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