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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로, 선 뒤에 숨겨진 시간의 틈을 찾다.

 

 이지연의 공간은 자신의 기억이다. 유년시절에 살던 집, 구조, 이미지는 작업의 모티브이다. 대부분 모노톤의 바탕에 단순한 직선으로만 구획된 계단과 실내 건축적인 공간의 재구성, 마치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조각들을 사각이라는 한정된 공간 틀에 짜 맞춰 고착시키는 방법을 취하고 있다. 때로는 절대적인 면을 구성하기도 하고 선으로 사각의 한정된 틀을 벗어나 새로운 세계로 유영을 시도한다. 마치 이 세상에 존재하는지 않는 좌표가 없는 시공간에서 존재, 시간, 이미지를 교묘하게 썩어 놓음으로서 현실 같지만 비현실 같은 공간을 보게 되는 불안한 진실을 깨닫게 한다.

 그 만큼 그녀의 기억은 그저 저 먼 과거의 것이기 보다는 그저 시간이 멈춘 이미지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면은 그저 면일 뿐이다. 작품을 보면 정적인 물리적인 공간처럼 보이지만 작가 자신의 가장 소중한 시간을 숨겨놓음으로서 감성적인 개인의 사유공간으로 재편집된다. 예를 들어 일정한 패턴의 선들이 화면을 구획하는 것은 기억을 찾아 추적하며 재구성에 들어간다. 시간은 앞으로만 진행하는 것이 분변의 진리인데 과거의 한 지점으로부터 계속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기억은 사라지기 마련인데 이지연 작가는 그렇게 조심씩 사라져가는 기억을 애써 부여잡기라도 하듯이 선을 긋고 있다. 그 기억으로부터 계속 멀어지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작가는 선은 그으면 그을수록 마치 부메랑처럼 큰 원을 그리며 자신에게 돌아오기를 기대하는지도 모른다. 바로 자신의 등 뒤... 이 세상에서 제일 가까우면서도 제일 먼 곳으로 말이다.

 

 공간에 하나의 점은 바로 존재, 그 자체이다. 그 존재에 시간을 더하면 선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선들이 지나간 흔적이 바로 면이다. 그 선들로 구획되어진 면들은 바로 기억이라고 생각하게 만든 피상적인 편린들이다. 이미 기억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은 시간을 상실한 무미건조한 이미지, 그것을 작가는 의도적으로 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이미 작품에서 표현하고 있다. 매일 같이 재편집되는 과거의 기억이라는 이미지들은 사실 정확한 기억들이 아니다. 우리가 오랫동안 먼지 속에 숨겨둔 사진첩을 의존하듯이 작가의 기억은 이미지화 되어 존재하지 않는 공간을 가로질러 시간의 선으로 표현한 것이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면들의 재구성으로 편집된 다 차원적인 공간이 아니라 그 면들을 복잡하게 설계한 선들이다. 공간을 선으로 쪼개서 다른 시공간으로 인도하는 이 선들은 의미적으로 작가 자신의 숨겨진 또 다른 모습이고 세상을 바라보는 자신만의 시선이고 중심이다. 더 나아가 이 선들을 통해 시간을 넘나들며 여행을 하고 이미지를 생산하고 자신과 숨바꼭질하는 것이다.

 이지연 작가의 작품이 현실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 있으면서 가장 먼 곳에서 세상을 직시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선은 기억을 추적하는 시간들이다. 모든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서는 절대적으로 시간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시간이 곧 존재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시간이 없는 것은 그저 공(空)이다. 아무 것도 없는 공(空)에 사이(間)가 바로 선이고 존재이고 시간인 것이다. 이 선은 어디 든 갈 수 가 있고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모든 존재를 증명할 수가 있다. 이 선들이야말로 미지의 공간을 열수 있는 열쇠이기 때문이다.

 이지연 작가는 충분히 현실을 직시했고 선을 통해 시간과 공간의 경계를 주시해왔다. 이제 새로운 시간의 관점에서 출발해서 그 기억을 더듬어 표현하는 방식이 아닌 기억으로부터 시작된 지금까지의 긴 여정을 선으로 다시 풀어내는 시간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김민기 대전시립미술관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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