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연의 기억이 가진 서사적 특이성

 

 기억은 이야기와 닮아있다. 특정한 시간, 특정한 장소, 그리고 특정한 사람들에 의해 빚어진 것이 기억이다. 시간과 공간과 인물이라는 기억을 구성하는 세 가지 요소는 곧 이야기의 기본 기둥이 되며, 따라서 기억을 말할 때 우리는 이야기꾼이 된다.

예술가는 어떠한 방식으로든 자신만의 이야기를 풀어가는 사람이고 예술은 달리 표현하면 기억을 말하는 작업이다. 그것은 실재의 기억일 수도 있고 꿈의 기억이나 무의식의 기억일 수도 있으며 개인적인 기억이거나 혹은 집단적인 기억일 수도 있다.

 

 이지연이 그려낸 기억은 실재적이며 동시에 사적인 기억이다. 작가는 누군가의 죽음에서 촉발된 자신의 유년의 기억을 반복적으로 그려내었다. [기억을 그리다] 그런데 그가 기억을 그려내는 방식은 독특하다. 기억을 구성하는 세 가지 요소 중에서 시간과 인물이라는 두 요소를 소거하고 그 자리를 공간으로 채워낸 것이다. [Recollecting Spaces] 전시의 제목에 주목하는 관객들은 이 부분에서 의문을 품게 된다. 공간만으로 이루어진 기억을 어떻게 읽어내야 하는가? 이지연이 기억을 그려내는 방식의 특이성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작품의 출발점인 그의 유년의 기억에 귀를 기울여보는 것은 이 지점에서 유효해진다.

 

 앞서 말했듯이 작가는 실재적이고 사적인 기억에서 이 시리즈를 시작하였는데, 1970년대 초반 부산시 수영구 광안1동에 지어진 주택과 그 안에 거주했던 사람들이 그의 기억을 구성하고 있다. 그 시간, 그 장소에서 그들과 함께 하였던 유년의 기억을 그려내기 위해서 이지연은 공간이라는 요소를 작품의 전면으로 내세운다. 공간 그 자체를 기억이자 서사로 전환시킨 것이다. 그리고 공간이라는 기억-서사 안에 다시금 시간과 인물을 배치한다. 이를 위해 그가 사용하는 것은 색과 선이다.

 

 [Recollecting Spaces - 기억을 그리다]의 주조를 이루는 보라색은 공간의 주된 인물인 작가의 할머니이다. 보라색은 신비하고 오묘한 속성을 가지고 있으며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기억의 색이 되기에 부족함이 없다. 꽃으로 치자면 할미꽃인 보라색을 받쳐주는 보조 인물은 개나리꽃 같은 노란색이다. 어리고 생동감 넘치는 노란색은 할머니의 손길 아래 있는 아기를 나타내며 이는 작가 스스로를 상징하기도 한다. 할머니와 아기가 공존했던 유년의 기억이 공간 안에서 서사를 이루어내는 것이다.

 다음으로 작가는 1970년대 초반이라는 시간을 침착한 직선으로 표현한다. 작품의 배경이 된 주택이 지어진 것이 1970년대 초반인데, 이 시기에 지어진 주택들이 대개 그렇듯 이 공간 역시도 새마을운동과 경제개발 계획이라는 시대적 배경 아래 양산된 실용적인 주택들의 특징을 가진다. 직선적이고 단단하면서도 이후에 등장하는 아파트에 비해서는 전통가옥의 정서와 완전히 유리되지는 않은 것이다. 작가는 이것을 공간의 연속성에 초점을 둠으로써 강조하였다. 단층으로 이루어진 아파트와는 달리 복층 구조의 주택은 계단과 복도가 필수적인데, 이를 통해 다른 공간으로 연결되는 가능성이 생겨난다. 이지연은 문이나 복도, 창문, 계단의 적절한 사용을 통해서 모든 공간은 고립되어 있지 않으며 보이지 않는 또 다른 공간으로 연속된다는 암시를 준다.

 

 이처럼 작가가 의도한 서사는 상당히 내밀한 출발점을 가지고 있지만, 이러한 의도와는 독립적으로 이지연의 작품은 그 자체로 충분히 심미성을 갖추고 있으며 다양한 해석의 여지를 가지고 있다. 기교를 부리지 않고 조형의 기본 요소에 충실한 이지연의 공간들은 차분하고 청결하다. 수없이 정제된 것임을 느끼게 하는 균형과 조화가 흐르고 있다.

분명한 것은 작가가 의도했던 서사를 읽어나가든지 혹은 관객 나름의 서사를 만들어가든지 간에, 이지연의 공간은 보는 이를 그 안으로 끌어들이는 흡인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가 다음에는 어떠한 서사를 지닌 공간으로 우리를 끌어들일지 기대해본다.

 

글. 박성진.

ALTUS 통합예술 연구소.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연세대학교 인문대학, 한국예술종합학교 ISD 서사창작 전문사를 졸업했다. 소설, 수필, 평론에 걸친 다양한 글쓰기를 하고 있다.